티스토리 뷰

도로교통법 제1조(목적) 이 법은 도로에서 일어나는 교통상의 모든 위험과 장해를 방지하고 제거하여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

문제점과 쟁점

조문의 모호성: 언제, 어디에 정지해야 하는가

'황색의 등화'의 뜻을 오해할 소지가 충분히 있어 사건 1에서 다툼이 있었다. 문언이 중의적으로 쓰여서 '정지선이 있거나 횡단보도가 있을 때' 정지해야 하고, 그 외의 경우에는 정지 의무가 없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사고 당시 이 사건 교차로의 도로 정비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아 정지선과 횡단보도가 없었음에도 대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어디에 정지해야 하는지도 불분명하다. 교차로는 아니지만 신호기가 설치된 곳(예컨대 어린이 보호구역 횡단보도 앞)에서 차마의 일부라도 정지선을 넘은 경우는 왠지 다루지 않고 있다. 현재의 조문대로라면 교차로 직전 횡단보도에 멈추어 설령 보행자의 통행을 방해하더라도 신호를 준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도로교통법 제27조 제1항을 보면 '보행자의 횡단을 방해하거나 위험을 주지 아니하도록 그 횡단보도 앞(정지선이 설치되어 있는 곳에서는 그 정지선을 말한다)'에 정지해야 한다. 차라리 '정지선, 횡단보도, 교차로 중 가장 가까운 것의 직전'이라고 규정하면 명료할 것이다.

운 나쁘면 신호 위반

정지 거리는 공주(空走) 거리와 제동 거리의 합이다. 공주 거리는 황색 신호를 인지한 순간부터 브레이크를 밟기 직전까지, 즉 공주시간 동안 원래 주행 속도로 이동한 거리이다. 공주시간은 개인차가 있으나 보통 0.7~1.0초로 본다.

시속 50km로 주행하면 1초에 약 13.89m를 이동한다. 제한 속도가 50km/h인 도로에서 정지선을 불과 10m 앞에 두고 신호가 황색으로 바뀌었다고 가정하자. 속도 제한을 지켰더라도 브레이크를 밟기도 전에 벌써 정지선을 넘게 된다! 단지 운 하나 때문에 신호를 위반하게 되는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비현실적이고 불가능한 상상에 그치지 않을까?

위 영상 2분 10초 캡처

때로는 현실이 상상보다 더 가혹한 법이다. 위 영상에서 다룬 2017년 사건 당시 경찰은 상대방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을 프레임 단위로 분석해, 제보자 차량이 황색 신호에 정지선 직전에서 멈추지 않은 사실을 신호 위반으로 봤다. 이 판단은 형사 및 민사 재판에서도 그대로 인용됐다.

기대 가능성: 긴급피난을 인정할 수 있는가

형법 제22조(긴급피난) ①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신호가 황색으로 바뀌었는데 달려오는 뒤차가 대형 버스나 덤프트럭이라고 상상해 보자. 이들은 제동 거리가 일반 승용차보다 50% 이상 길다. 물론 모든 차의 운전자는 도로교통법 제19조 제1항에 따라 안전거리를 확보해야 하지만, 내가 급제동하면 뒤차가 추돌할 것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자신과 동승자의 생명보다 고작 신호(에 대한 위험하고도 잘못된 해석)를 지키는 것이 과연 도로교통법의 목적인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하는 길일까? 이 장면에서 교차로로 진입했는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적색 신호를 위반해 달려오던 다른 차와 사고가 났다면 내 잘못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뒤따르는 차가 없어도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황색 신호로 바뀌었다고 서 있는 승객이 많은 버스를 급제동시킬 기사가 몇이나 될까? 차 안에 운전자만 있다고 한들 정지 거리가 충분하지 않으면 교차로 한가운데 멈출 텐데, 이는 다른 차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도록 교차로 진입('꼬리 물기')을 규제하는 도로교통법 제25조 제5항의 입법 취지에 어긋난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더군다나 자신을 포함한 탑승자 전원의 생명을 위협하면서까지 해내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외국 사례

Convention on Road Signs and Signals
Vienna, 8 November 1968

Chapter III
TRAFFIC LIGHT SIGNALS

Article 23
Signals for vehicular traffic

1. (생략)
(a) Non-flashing lights:
(iii) an amber light, which shall appear alone or at the same time as the red light; when appearing alone it shall mean that no vehicle may pass the stop line or beyond the level of the signal unless it is so close to the stop line or signal when the light appears that it cannot safely be stopped before passing the stop line or beyond the level of the signal. Where the signal is placed in the middle or on the opposite side of an intersection the appearance of the amber light shall mean that no vehicle may enter the intersection or move on to a pedestrian crossing at the intersection unless it is so close to the crossing or the intersection when the light appears that it cannot be safely stopped before entering the intersection or moving on to the pedestrian crossing. When shown at the same time as the red light, it shall mean that the signal is about to change, but shall not affect the prohibition of passing indicated by the red light;

도로 표지 및 신호에 관한 비엔나 협약은 황색 등화 시 차량이 정지선을 넘거나 교차로에 진입, 또는 횡단보도로 진행하기 전에 안전하게 정지할 수 없을 만큼 가깝지 않은 한 통과하면 안 된다고 규정한다. 우리가 정의한 딜레마 존과 의미가 통한다! 국제 기준은 황색 신호에 통행을 전면 금지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나라가 이 협약에 서명만 했을 뿐 비준하지는 않았으므로 국내에서 아무런 효력이 없다.

결론

해결법

간단하다. 문제가 되는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별표 2를 고치면 된다. 행정안전부령이므로 법이나 시행령(대통령령)보다 개정하기 쉬울 텐데, 왜 그대로 방치하는지 모르겠다.

운전자가 아예 딜레마에 빠지지 않게끔 교통 상황을 파악해 녹색 신호를 연장하는 기술이 개발됐다. 보행자 신호처럼 차량 신호도 잔여 시간을 표시해 주는 소위 '카운트다운 신호등'도 시범 운영 중인데, 오히려 운전자가 마음이 급해져 황색 신호에 서둘러 통과하는 차량이 많아졌다고 한다. 두 가지 모두 딜레마 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으로 보기는 어렵다.

맺음말

황색 신호는 기본적으로 멈추라는 뜻이다. 단, 안전한 곳에 정지할 수 있을 때만 해당하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차나 보행자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도록 신속히 통과하거나 교차로 밖으로 빠져나가야 한다. 딜레마 존 사고에서 운전자의 과실 여부를 판단하는 법령과 제도를 하루빨리 개선해야겠지만, 애초에 그런 사고가 나지 않도록 황색 신호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사고를 유발하는 위험한 운전 습관도 고쳐지기를 바란다.

최근에 올라온 글
TAG
more
Total
Today
Yesterday